한국의 모마(MOMA) : 겸손한 미술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art 댓글 2건 조회 9,410회 작성일 09-01-21 20:31

본문

 

흔히 ‘모마MOMA(the Museum of Modern Art)'로 불리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은 미술애호가나 예술가에게는 그 자체가 현대미술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미술의 성전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러한 모마를 패러디하여 광진구 세종대 옆 광진광장에 또 다른 모마가 건립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름하여 겸손한 미술관(MOMA; the Museum of Modest Art, 기획 손한샘)은 20여명의 세종대 회화과 학생들과 강사진들이 도시갤러리 대학 및 지역공동체 프로젝트의 하나로 선정되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지역사회 내에서 대학사회의 역할을 문화적으로 모색하고 젊은 미대생들이 공공미술을 경험해 봄으로써 예비 공공미술가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대학 및 지역공동체 프로젝트는 현재 수도권 내에서 총 3개의 대학(추계예대, 세종대, 건국대)이 선정, 추진되고 있다.

 

남루한 컨테이너의 변신, 아기자기한 소통의 공간으로 변신

‘겸손한 미술관’은 저예산일지라도 적당한 공간만 허락된다면 근사한 지역미술관이 만들어 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회색빛 중고 컨테이너 2동을 임대하여 각각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개최한다. 컨테이너 뒷면은 낙서의 즐거움을 맘껏 드러내도록 아트월(Art wall)을 구성하였고, 앞면은 값싼 재료를 활용하여 산뜻하게 치장하였다. 거기에다 두 동을 연결하는 유기적인 파이프들은 저쪽사람과 이쪽사람이 소곤대며 이야기하는 울림통이 되고 있다. 미술관 자체가 어떠한 권위도 느껴지지 않는 놀이터인 셈이다. 

 

 

2039473352_f3ddf506_dscn0133_ptrevo_1mWQ7jkbW.jpg

 

 

관계를 만드는 미술관, 미술작품은 소통의 도구. 

이 미술관의 운영에는 독특한 규칙이 있다.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는 있지만, 갈 때에는 그냥 갈 수 없다. 일명 ‘맞장 프로그램(상호교환작업)’은 예술가가 현장에서 만든 작은 작품들을 가져갈 수 있지만, 이에 대한 보답으로 주민 또한 예술적 기여(artistic gift)를 해야한다. 주민들은 즉석에서 그림을 그려서 작품과 맞바꾸거나 시 한수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솜씨 없는 분들은 동네야사라도 들려준다. 즉, 겸손한 미술관의 콜렉션은 누군가의 손으로 흘러들어갈 예술가의 소품과 이를 대신하여 들어온 주민의 작품으로 구성된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손쉽게 자신의 작품을 넘기지는 않는다. 자신이 쏟아 부은 정성만큼이나 주민 또한 솜씨가 없더라도 맘과 정성을 보이는 한에서만 상호대등한(?) 교환이 이루어진다. 어떤 작가의 경우에는 아예 주민의 답례를 차일피일 미룸으로써, 오히려 계속 미술관을 찾아오게 만든다고 한다. 처음에는 앙증맞은 소품에 매혹되어 찾아온 이들이 점점 예술가의 친구가 되고, 겸손한 미술관의 단골손님이 되어간다. 

 

 

2039473352_679ee92d_dscn0007_ptrevo_wnXtOWvW.jpg

 

 

 

현장에서 작가들이 상호교환용으로 만드는 작품들의 재료들도 참으로 겸손하기 그지없다.

버려진 나뭇가지나 공사장에서 흘러나온 폐목으로 나무조각을 한다던가, 구멍난 양말과 자투리 헝겊으로 얼기설기 만든 인형, 버려진 골판지를 이용하여 만든 위험하지 않는 장난감 총, 버릴까말까 고민하던 민무늬 티셔츠에 그림그리기 등. 일상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 시시해서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사물들이 예술가의 손맛으로 다시 재탄생하고 있다. 값비싼 미술전문 재료를 사기에는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이런 사물들이야 말로 모든 사람이 손쉽게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가꿀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2039473352_f71f74e6_25B125D725C725D225BE25C625B925F625C125F6jpg_ptrevo_my5VIIufYb52a7.jpg

 

 

지역의 숨은 재주꾼, 생활형 미술가들의 조명

미술관 본연의 임무는 ‘전시’다. 여기 겸손한 미술관에서는 어떤 전시를 볼 수 있을까. 여기에서는 동네에 숨어있던 ‘생활형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기획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야말로 예술가들은 기획자로 동네의 숨은 재주꾼을 발굴하고, 섭외하여 작가로 초대전을 열어준다. 주민이 오히려 미술관의 어엿한 주인공인 셈이다.

1회 기획전은 ‘돌아온 츄리닝’이라는 이름으로 세종대 인근의 주택가에서 학생들이 버린 각종 물건들을 모아서 다시 해체조립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한 할아버지의 전시로 10월 3일부터 시작된다. 

2회 기획전은 중국교포로 잠시 한국에 들어오신 한 할아버지의 초대전으로 아마추어 동양화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분들의 작품은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완성도나 세련미에서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미술교육 한번 받은 적 없어도 창작과 생산의 즐거움은 누구나 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즉,  아마추어들이 발휘하는 생활 속 창의성과 사물을 다루는 태도는 지혜와 신선함이 묻어있고, 창작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다양한 결들로 이루어지는지 보여준다. 전문영역은 전문영역대로, 마니아는 마니아문화대로, 아마추어는 아마추어문화대로 각자의 문화와 가치가 인정되는 곳이 겸손한 미술관이다. 그러니까, 소수만이 향유하는 고급미술만이 수준 높은 문화라는 생각을 버리고, 다양한 생활문화, 하위문화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오늘날의 현대미술에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39473352_89c5494a_dscn0023_ptrevo_hOX1eXjB.jpg

 

  

 

겸손한 미술관과 우리동네 문화광장 만들기

겸손한 미술관이 자리잡은 ‘광진광장’은 96년도에 도깨비 시장을 허물고 지하에는 주차장을, 지층에는 다중이 이용할 수 있는 광장으로 조성되었다. 보드매니아들이 간혹 연습하러 오거나 구청에서 허락한 일회적인 이벤트 행사가 간혹 있을 뿐, 평상시에는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밋밋한 공간이다. 넓은 공간에 비해 충분한 문화적 요소, 프로그램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광장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 않고 지역 주민들도 자신의 공간으로 절실히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동네 이야기와 지역 사람들이 만든 작품, 그리고 예술가들과의 새로운 관계맺기가 가능한 겸손한 미술관은 무채색의 소규모 지역 광장(Community Open Space)이 어떻게 예술문화적으로 활기와 색채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홍대앞 문화놀이터나 대학로의 마로니에공원의 경우에는 외부의 예술가들이 놀다가는 형태이지만, 겸손한 미술관을 통한 광진광장은 이보다는 지역민이 함께 구성하고 만드는 우리동네 문화광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이 있다. 인근 대학의 인적 자원들이 지속적으로 지역과 만나고 미술과 문화를 통해 소통하는 장으로서 겸손한 미술관이 그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글_ 전민정)

 

    

 

추천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톡으로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