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 아트스페이스] 손동현: Jasmine Dragon Phoenix 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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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은아트스페이스 댓글 0건 조회 7,093회 작성일 17-08-01 15:22본문
제15회 송은미술대상 대상 수상작가 개인전
손동현: Jasmine Dragon Phoenix
Pearl
2017. 7. 28 - 9. 2
손동현은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중요하게 다뤄지며 널리 알려진 전통적인 사조나 기법, 형식, 매체의 특성을 바탕으로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동양화로 풀어내는 실험적인 작업을 전개해왔다. 작가는 첫 개인전 “파압아익혼: 波狎芽益混”(2006)을 시작으로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대중적인 가상의 캐릭터를
동양화 기법으로 재현한 바 있다. 초상화에 있어 인물의 외형 모사에만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고매한
인격과 정신까지 나타내야 한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가치를 전제로 삼아 눈에는
보이지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를 역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전통적인 회화소재나 접근방법에 대해 반문하고 이를 현재의 시점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었다. 또한, 한국의 전통 어좌(御座) 위에 팝의 제왕인 마이클 잭슨을 앉히고 시대별로 변모하는 얼굴과 복장을 정면으로
그려낸 (2008) 연작과 더불어 1962년과 2002년 사이에 만들어진 영화 ‘007 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요 악역들의 캐릭터를 담은
(2011) 연작을 통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혹은
통용되는) 대중문화의 가치체계나 동향을 동양화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진지하고 철저하게 분석하였다.
동시대 대중문화 캐릭터와 전통
회화의 결합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도해 온 손동현은 최근 개인전 “Pine Tree”(2014, 윌링앤딜링)와 “Ink on Paper”(2015, 갤러리 2)를 기점으로 작업에 변화를 모색하였다. 이전에는 대중적인 캐릭터가
초상화의 주인공이자 작업을 주도하는 역할이었다면, 2014년 이후에는 소나무와 같은 동양화의 소재나
동아시아 회화사에서 꾸준히 주목해 온 산수와 인물/글자와 그림의 관계를 한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으로
가정하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인물화 작업을 시도한다. 이 인물들은 화어(華語)권 대표 배우들의 얼굴과 슈퍼히어로, 무협만화에 나올 법한 포즈로 표피적으로는 여전히 대중문화의 틀에서 읽히는 듯하다. 그러나 기실 이들은 동아시아 회화에서 다뤄졌던 중요한 주제나 화법, 회화의
요소나 재료의 물성을 기반으로 작가에 의해 창조된 -2014년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의미의- 가상의 협객들이다. 이번 전시
“Jasmine Dragon Phoenix Pearl”에서 손동현은 동양화라는 시스템을 해부하고 유희한 최근 2-3년간의 과정을 28 점의 신작을 통해 선보인다.
메자닌
손동현은 한동안 작품의 수를 의도적으로
정해놓고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예를 들어, 마이클 잭슨의
싱글앨범 수에 맞춘 40개의 초상화, 미국의 맨해튼을 부수는
영화 10편을 그린 병풍형식의 산수화, 중국 화가 사혁(謝赫)이 제시한 육법(六法)을 근간으로 여섯 명의 협객을
그린 <육협(六俠)>(2015) 등-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이와는 달리 하나의 작업에 꼬리를 물고 다음 작업으로 연결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흘러내리고 퍼지고 번지는 먹이라는 -작가에게 다소 긴장감을 선사하는- 매체의 물성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의 인물로 간주하고 그려낸 를 시작으로 작가는 동양화의 여러 요소들을 가지고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 더
나아가 그가 가진 무공(武功) 혹은 이능력(異能力)¹으로 간주하여 하나의 인물 안에서 적극적인 실험을 시도한다. 메자닌층 제일 아래 부분에는 파도나 계곡물이 부딪히는 등 물을 표현하는 기법으로 그려진 를 중심으로 흑색의 물소인간 과 새우인간 가 위치한다. 양 옆에 두 작품은 대가들의 고유한 화법이나 그들이 주로 그리던 화재(畫材)를 재구성하여 화면에 펼쳐놓은 것으로 각각 중국화의 대가 리커란(李可染, 1907-1989)과 그의 스승 제백석(齐白石, 1860-1957)을 염두하며 진행된 작업이다. 안개나 구름을 표현하는 효과를 사용한 , 인물화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평필(납작붓)로 그린 는 인물화의 양식을 빌려 산수화의 표현기법과 도구의 전환을 시각화한 작업들로 메자닌
측면에 설치되었다. 동양화의 기본으로 일컫는 사군자 역시 하나의 인물인 로 탈바꿈하였는데, 이는 사군자가
가지고 있는 의미보다는 각자의 모양에 더 집중한 형태로 메자닌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았다.
2층
전시장 2층에 설치된 과 는 동일한 밑그림이 사용된, 서로
마주보고 있는 거울상의 작품이다. 전자는 인물십팔묘(人物十八描)²를 모두 적용하여 선으로만 묘사한 인물화이며, 후자는 먹을 깨뜨려 농담을 조절하여 그리는 파묵법과 물을 많이 섞어 윤곽선 없이 그리는 발묵법을 위주로 그려졌다. 탁본 기법 역시 라는 인물을 통해
재탄생하게 되는데, 탁본에 사용된 물건들은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사용하는 먹, 자전, 접시 등의 도구들이다.
3층
3층 초입에는 작가가 과거 문자도
작업에서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진행해온 글자와 그림의 관계에 대한 고찰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번 전시와 작품들에 대한 제발(題跋)³의 역할을 한다. 글자와 그림의 기원이 같고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보는 서화동체론(書畵同體論)과 서화동원론(書畵同源論)을 그래피티의 형식을 차용하여 쓰며 그린
, 문자가 추상화되는 과정을 포착하고 그것을 다시 인물화로서의 완전한 구상화로 전환한 , 동양화에서 중요하게 여겨져 온 획(劃)에 대한 작가의 탐구와 함께 청초(靑初)의 화가인 석도(石濤)의 일획론(一劃論)을 떠올리게 하는 , 동양화와 뗄 수 없는 관계인 표의문자로서의 한자에 특징을 살려 인체 각 부분에
해당하는 한자로 인물을 구성한 모두 작가의 글씨와 그림에 대한 실험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일획론은 흡사 무협지와 같이 “태고의 무법이 일획에
의해 유법으로 전환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서
일획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그 첫 번째 의미는 작가가 붓으로 먹물을 찍어 화면에 첫 점을 대고
선을 긋는 순간이며, 두 번째는 문인화론(文人畵論)에서 말하는 마음속 생각을 표출한다는 뜻의 ‘사의(寫意)’나 마음으로 우려낸 그림이라는
‘심화(心畵)’에 빗대어 보면 작가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단단한 주제의식이나 방법론으로도
보여진다. 3층 안쪽 전시장에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의 드로잉북 역할을 한 화첩과 그 일부가
아카이브 형태로 조명되는데, 주로 얼굴과 손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하고 실험한 손동현의 작업과정과 세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
4층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 들어서면
여섯 개의 화폭이 연결되어 이번 전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림으로 전시되는 이 자리잡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 제15회 송은미술대상전 때 선보였던 <육협> 연작 중 크기가 가장 작은 작품이자 현판의 역할을 했던 (2015)의 확장판 문자도이다. 옛 그림의 모사를 통해 우수한
전통을 발전시킨다는 의미의 ‘전이모사(轉移模寫)’가 이전 작업에서는 ‘육법(六法)’이라는 한자로 형상화되었다면, 이번에는 인물화인 동시에 문자도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그 옆에는
동양화에서 산수화를 그릴 때 새까만 밤은 담묵으로 슬쩍 처리하고 앞부분에 위치한 산을 어둡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려진 이 자리잡았는데, 밤의 산수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까맣게 칠해진 배경 위에 그림의 주인공인 ‘가장 어두운 밤’이 밝은 형태로 부각된다. 전시공간 중간에 설치된 는 세네 가지 종류의 먹을 사용하여 그리는 속도와 강도에 변화를 주며 작업한
것으로, 제목처럼 그림이 보이는 종이 뒷면에 인물을 그려 반대편으로 먹이 베어 나오는 효과를 활용하였고, 은 조형의 기본요소인 점, 선, 면의 시작점인 점으로 형체를 만들어 인물화의 양식을 빌려 회화의 요소를 시각화한 작업이다. 4층의 마지막 부분에는 산수화를 그릴 때 산과 돌의 입체감이나 양감, 질감, 명암 등을 나타내기 위해 표면을 처리할 때 사용되는 준법(皴法)들을 인물화의 형태로 바꾼 작업들이 자리 잡았다. 에는 풍화작용으로 침식된 산세를 표현하는 운두준(雲頭皴)과 암벽이나 토산의 표면을 그릴
때 사용하는 귀면준(鬼面皴) 등을 조합하였고, 에는 구불거리는 실 같은 선들이 엮여있는 모습의 피마준(披麻皴), 연잎 줄기와 같이 생겨 산봉우리에
주로 사용되는 하엽준(荷葉皴), 앞의 두 개 준법과 유사하지만
선이 더 길고 복잡하게 엉켜있는 듯한 해색준(解索皴) 등을 사용하였다. 은 뾰족하고 험악한 바위의 표면이나 깎아지른 산의 입체감과 질감을 표현할 때 쓰는
부벽준(斧劈皴)에 관한 인물화로, 이 준법은 도끼로 찍거나 끌로 판 자국과 비슷하여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데, 준법의 영문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하였다. 그림을 완성한 뒤 작품에
자신의 이름이나 날짜 등을 쓰고 도장을 찍는 낙관(落款)으로서의 인물화 은 이번 전시와 작품들에 대한 작가의 마침표를 대신한다.
¹ 이능력(異能力): 일본 서브컬쳐계에서 주로 사용되는 단어로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전통적인 초능력의 범주에 들지 않는 능력을 뜻함.
² 인물십팔묘(人物十八描): 중국 인물화 기법 용어로 역대 인물 화법을 18종의 옷 묘법(描法)에 따라 분류한 것.
³ 제발(題跋): 그림이 있는 화면이나 표구의 대지 위에 쓰인 그 그림과 관계되는 산문으로 화가 자신이 쓰거나 다른 사람이 쓰기도 함. 이 글을 통하여 그림이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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