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아展 / 갤러리 분도_Gallery Bu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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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rt 댓글 0건 조회 5,806회 작성일 09-04-02 14:21
전시기간 ~
전시장소명

박경아展 / PARKKYUNGA / 朴卿兒 / painting

2009_0309 ▶ 2009_0404 / 일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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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오후(Nachmittag)_캔버스에 유채_200×250cm_2004




초대일시_2009_0309_월요일_06:00pm

청년작가프로모션 초대전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_Gallery Bundo
대구 중구 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53.426.5615
www.bundoart.com


갤러리 분도는 작년에 이은 2009년 청년작가 프로모션 기획으로 서양화가 박경아를 초대했다. 영남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독일에서 10년 가까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박경아의 이번 전시는 그녀가 다듬어 온 미적 세계를 한국의 관객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리는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작가 본인의 인지 속에 남은 자연 혹은 공동체의 경관을 화폭에 옮겨 놓은 그림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노스탤지어를 이끌어내는 촉매로 작용한다. 현대 미술의 담론 속에서 풍경화는 아뤼에르가르드(예술적 후위)로 재편되면서, 예술성을 선취하는 폭이 매우 좁아졌다. 그렇지만 박경아의 회화 작업은 우리가 기대하는 서정적인 면과 지적인 면 모두를 충족한다. 어떤 그림들에서는 음영이 짙은 색채를 구사하고, 또 다른 그림들에서는 화사한 초록이 감도는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햇빛이 지나가며 연출하는 저마다의 풍경을 차분하게 재현한 결과이다. 

박경아가 뮌스터 대학과 가창 스튜디오에서 완성한 이 그림들은 어느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한 채, 독일에서는 한국을, 또 한국에서는 독일을 그리워하는 심리가 절절히 녹아있다. 그녀는 그림이라는 창을 통해 향수를 달래 온 셈이다. 이렇듯, 경계인(boundary man)으로서의 고독은 작가로 하여금 ‘바로 그곳’-한 가운데의 주류보다 언제나 조금씩 비껴난 위치를 선택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매혹적인 미술로 관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갤러리 분도의 이번 초대전에서는 독일에서 직접 공수되어 온 작품을 비롯하여,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주관의 가창 창작스튜디오에서 작업한 회화 작품을 함께 공개한다. 올해로 두 번째를 맞는 청년작가 프로모션은 앞으로도 선정 과정의 엄격함과 기획의 치밀함을 잃지 않고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 윤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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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오월의 기억(Feld)_캔버스에 유채_175×22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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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11월의 숲(Wald)_캔버스에 유채_250×200cm_2004


풍경의 조건, 실재와 부재(不在) 사이-박경아의 회화세계-떠도는 풍경

 이 작가는 특유의 풍경화로 삶을 대변한다. 역시 사람들이 풍경을 물들이고 풍경이 또한 사람들을 물들인다. 풍경의 조건은 그렇듯 삶 그 자체이기도 하다. 특히 박경아의 풍경들은 거의 인물들이 표현되고 있지 않다. 간혹 인물들이 등장한다 해도 풍경의 한 부분으로서 마치 서 있는 나무들이나 숲의 그림자와 등가가치로 표현된다. 작가는 그만큼 가시적 풍경을 전제로 하면서도 실재적인 풍경 너머 심리적 풍경을 반추하고 있다. 풍경의 조건과 그 자리는 그렇듯 실재와 부재 사이에 부유한다. 작가의 시선이 인지와 상상 사이에 놓여 있는 한, 감각을 통하여 감각을 넘어서는 자리에 진정한 풍경이 존재한다. 그러한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대변하는 것이 창문이다. 창문은 이곳과 저곳, 차안과 피안, 현실과 꿈, 체험과 회상 사이를 넘나들고, 또한 시간의 기억 사이를 넘나드는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서 창문은 해독되어야 할 일종의 암호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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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침묵(schnee)_캔버스에 유채_110×130cm_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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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빛과 바람_캔버스에 유채_72×91cm_2008


세상의 문과 눈

독일 낭만주의 작가 프리드리히의 그림에는 늘상 창 밖을 주시하는 여인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시대 낭만적 아이러니를 대변하는 피안에의 동경을 암시한 것이다. 그만큼 풍경화는 시대정신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그러나 21세기 다국적인 테크놀로지의 세기에 박경아가 바라보는 세상의 문은 더욱 멀고 또 흔들리고 있다. 너무나 보이는 것들이 몽롱해서 마저 다 그리지 못한다. 그래서 미완(未完)의 그림처럼 흐릿하게 남아 있다. 끝내 삶과 예술이 미완이듯 그의 그림은 일찍이 미완의, 그리고 미결(未決)의 세계를 전한다. 작가의 눈은 이미 그런 세상을 보아버린 듯하다. 그러므로 자연의 모습이나 건물의 일부, 혹은 소나무의 윗부분 등은 다만 자신의 자화상을 드러내는 장치에 불과하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이라도 풍경의 표정으로 이미 작가의 삶을 대변하는데, 이 번 전시 작품 중에는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들도 몇 점 선보인다. 숲길의 빛과 그림자처럼, 때로는 얼룩처럼 몽환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삶의 길에서 느껴온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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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빛과 바람 _캔버스에 유채_60×72cm_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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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아_내안의 창-스며들다_캔버스에 유채_97×145cm_2008


시간의 기억 속으로

 모든 작업의 주 모티브가 「내 안의 창」이듯이 창은 세상을 바라보는 공간적인 출구이면서 또한 지나간 시간의 기억과 미래의 길을 예견케 하는 통로가 된다. 투명한 유리와 반투명의 커튼 사이로 보이는 산 덩어리나 들판 풍경, 혹은 하늘과 시멘트 건물, 건물의 실루엣과 나뭇가지들 등은 모두 빛과 그림자, 바람결의 기운에 용해되어 아주 비현실적이면서도 또 다른 시간의 지층을 투영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기도 하고 노스탤지어이기도 하고, 미래의 예견이기도 하고, 혹은 찰나의 눈에 비친 영원성이기도 하다. 오랜 독일 유학과 귀국 후의 낯섦은 어느 곳에건 안주할 수 없는 ‘고향상실증’과 ‘집없음’의 심리적 불안감을 배태하게 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작가에게 있어 풍경회화는 바로 그러한 심리를 토로하는 매개체가 되면서 동시에 숨을 쉬기 위하여 또 하나의 창을 마련해야 하는 정신적 필연성을 대변한다. 그러나 이러한 그림의 예술적 보편성은 어디까지나 작가 한 개인의 체험의 표출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곧 모든 인간의 실존적 정황은 삶과 죽음, 안과 밖, 여기와 저기, 찰나와 영원 사이에 부유하며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고향상실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작가가 토로하는 낯선 길의 불안과 희망은 우리 모두의 불안과 희망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그의 연민의 시선은 우리 모두에게로 닿아 있다. 역시 관객들은 우도 쇨 교수도 지적했듯이 “그의 풍경 속에서 자신을 잃기도 할 것이고, 동시에 자신을 찿기도 할 것”이다. ■ 장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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