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OCI YOUNG CREATIVES 이주영 개인전 《Wet Words Whisper W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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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CImuseum 댓글 0건 조회 248회 작성일 25-06-05 17:05작가명 | 이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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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기간 | 2025-06-12 ~ 2025-07-26 |
휴관일 | 일, 월 |
전시장소명 | OCI미술관 |
전시장주소 | 03144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
관련링크 | http://ocimuseum.org/portfolio-item/%ec%9d%b4%ec%a3%bc%ec%98%81-wet-wo… 3회 연결 |
Wet Words Whisper Wide
어둠으로부터 언어를 열어내기
언어 앞에서 머뭇거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어가 지닌 힘은 의미 전달을 넘어서 권력과 소통 사이에서 복합적인 의미작용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주체를 자각하게 하는 사유의 시작점이자, 타자와 세계를 규정할 뿐만 아니라 사회 조직과 지배 논리를 강화해 온 담론의 핵심 장치로서 문명 전체에 걸쳐 작동해 왔다. 이주영의 작업은 언어와 권력, 그리고 행위 사이에서 존재하는 관계망을 질문하고 그 역학관계를 의심하는 과정에서 출발한다. 드로잉, 공간 설치, 무빙 이미지, 시, 책, 오브제 등 복합 매체를 통해 다른 언어의 가능성을 모색해 온 작가는 언어·권력·행위 사이에서 발화되지 않은 것들에 주목해 왔다.
작가의 다섯 번째 개인전으로 마련된 《Wet Words Whisper Wide》는 언어를 둘러싼 규범의 한계를 넘어 언어의 관습을 유연하게 해체하는 시적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단어들이 W를 바탕으로 리듬감있게 결합한 전시 제목은 작가 노트에 담긴 바와 같이, “wet은 형태를 고정하지 않고 흘러가는 물성의 유동성을, whisper는 단정과 명령의 언어로부터 벗어난 작은 떨림과 머뭇거림을, wide는 해방된 언어의 확장”으로부터 연상된 것이다. 첫소리가 반복되는 전시 제목은 비문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며, 언어를 조직하는 고정된 문법과 발화의 방식을 비틀고 해체의 의지를 내비친다. 이때 반복되는 ‘W’는 구축과 해체 사이에서 등장하는 발성의 감각을 강화하며, 이번 전시에서 다뤄질 언어의 수행성과 재구축의 돌림노래를 예고한다.
프롤로그 : 검은 입자로부터 언어를 쓰기
본 전시의 시작과 끝에는 검은 물의 흔적을 담은 목탄 드로잉이 자리한다. 작가가 전시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은 언어를 다루는 관점과도 연결된다. 공간의 규범 너머에서 존재하는 접촉과 연결의 가능성을 직조하고자 하는 태도로서이다. 그 첫번째 모티브로서 OCI미술관의 1층 진입부 벽에는 두음법으로 이뤄진 전시 제목처럼 이 전시의 프롤로그이자 에필로그로 등장하는 목탄 드로잉이 걸린다. 작가에게 목탄은 언어의 속성을 분해하고 변주하고 재구축하는 질료로서 초기작부터 집요하게 탐구되어 왔다. 이전 작업에서 <검은물>(2021-)이 화자와 청자 사이의 왜곡을, (2022-)가 검은물의 흔적을 통해 언어가 한없이 불투명해지는 속성을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에서 <검음을 향해>(2025)와 <검음 안에서>(2025)는 어둠 속에서 모색되는 진실의 목소리와 이에 비추는 미세한 빛의 자취를 찾아 나선다.
숨을 들이 내쉴 때마다 콧속으로 들어오던 목탄 가루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했던 작가에게 이 목탄은 언어와 같은 존재이다. 언어가 도구에서 머물지 않듯, 목탄의 존재 또한 표현의 수단을 넘어서 미립자로 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 작업실을 나와 여러 번 몸을 씻어도 콧속 너머 미세한 입자로서 잔존하는 목탄 가루는 이번 전시에서 언어의 물질성을 몸소 탐구하는 작가의 수행적 태도가 매개된 근원적 매체라 할 수 있다. 두 점의 목탄 드로잉은 작업의 내용과 형식에서 나아가 작가 자신의 신체 및 사고와 밀접하게 연결된 모티브로서 전시의 시작과 마지막, 앞뒤를 트레이싱지처럼 잇고 연결한다. 진입부에서의 <검음을 향해>는 종이판넬 위에 그려진 28점의 목탄 드로잉이 배치된 작업으로, 40x40cm이라는 정방형의 화폭은 배치에서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모듈로서 다뤄진다. 좌측에서 우측으로 시선을 움직일수록 검은 톤이 서서히 짙어지는 이 작업은 전시동선 상 우측 벽에서 마지막에 등장하는 <검음 안에서>에 그려진 컴컴한 어둠의 조건과 시지각적으로 매개됨으로써 전시를 아우르는 잔상으로서 머문다.
몸의 언어로부터, 미완의 언어를 수행하기
두 점의 목탄 드로잉이 전시장을 한 바퀴 에워싸는 구성에 더해, 그 사이를 전체적으로 잇고 관객의 신체를 유도하는 흐름으로는 휘어진 가벽이 있다. 완만한 곡선으로 구부러진 벽을 경계로 하여 한쪽 공간에는 퍼포먼스 영상 두 점이 전시되고, 그 뒷면의 공간으로는 세 권의 책이 전시된다. 무빙 이미지의 형식으로 사전에 구성된 퍼포먼스를 편집하고 재구성해 온 작가에게 있어, 퍼포먼스는 언어와 행위 사이의 불완전성과 불확실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감각의 확장을 통해 언어 너머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수행적 매체이다. 그러한 작가의 태도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업으로서 <침묵>(2024)을 떠올려 보자면, 몸은 언어 이전에 앞서서 존재하는 근원적 언어의 태동지로 다뤄진다. 굳게 닫힌 입안에서 혀가 입속 공간을 전체적으로 밀어내듯 구르는 동작을 반복한 이 영상에서 침묵이라는 조건은 저항적 반언어로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두 영상에 담긴 각각의 퍼포먼스는 마치 이전 작업에서 닫힌 입안에 있던 언어들이 몸의 장기를 타고 이동한 것처럼, 입 밖으로 쉽사리 누설되거나 발설되지 않고 몸속으로 감춰지고 몸 곳곳을 배회하면서 머뭇거리는 몸짓으로 발현된다.
확장된 구조체처럼 휘어진 벽을 타고 프로젝션 된 <머뭇>(2025)에서는 언어가 불완전한 상황일 때 언어를 모색하기 위해 표출되는 신체적 행위가 숨을 고르고, 몸을 쓸어내리고, 입을 가리는 등 여러 동작과 소리에 걸쳐 모색된다. “음.. 어.. 하.. 씁.. 아..”와 같은 소리는 신체적 제스처와 동작, 떨림과 숨결 사이에서 발성되며 언어로 규명될 수 없는 비언어들의 몸체를 드러낸다. 퍼포먼스의 시퀀스는 점차 신체의 움직임으로 확장되며, 입을 가렸다 열거나, 허공에 단어를 쓰려다 멈추는 장면들로서 의미화 작용을 시도한다. 검은 배경을 바탕에 두고 손의 동작이 또렷이 등장하는 (2025)는 무언가를 빚어내고 그려내고 써 내려가는 손이라는 조형적 주체를 중심에 둔다. 조형의 프레임으로서 몰드를 제작하는 손에서 착안하여 시작된 이 작업은 말의 틀, 형식의 구조 및 시각언어가 손동작을 통해 포개지고, 뭉개지고, 쪼개지고, 다시 연결되다가도 흘려보내지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서로 마주한 두 점의 영상은 몸을 통해 해체되고 재구축되는 언어적 리듬을 공감각적으로 형성하며, 그사이를 오가는 관객의 동작을 수행의 시공간으로 끌어들인다. <머뭇>에 등장하는 자막인 “머뭇 ( ) 나아간다”를 떠올려본다면, 복수의 신체들은 미완의 텍스트가 지닌 공백을 공간의 영역으로 해방시킨다.
신체의 유연한 움직임을 타듯 휘어진 벽을 돌아 뒤편으로 가면, 세 권의 책으로 구성된 <겹쳐진 시>(2025)가 전시된다.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로 구성된 책 작업은 작가가 쓴 시에서 출발하지만, 그 시를 책의 형식으로 종결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의 책은 페이지를 넘길수록 언어가 중첩되고 겹치면서, 각각의 문장은 의미를 확고히 하기보다 페이지의 리듬 속에서 재배치된다. 시적 언어를 구현하는 작가의 관점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란 개념과 관련해 고찰해 볼 수 있다.1) 작가가 제작한 책에서 텍스트는 페이지들의 논리적 체계가 아닌 관객이 넘겨보는 리듬적 사건으로부터 구축되기 때문이다. 가령 페이지에서 확언에 찬 문장은 다음 페이지에서 곧 의심으로, 결론은 다시 시작으로 되돌아가는 흐름을 지닌다. 각각의 페이지는 불확실한 구조 안에서 관객이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를 통해 상호 간에 매개되고, 이로부터 언어는 자신을 고정하려는 욕망 속에 스스로 미끄러지며 시적 언어의 구조로 이행되어 나간다.
에필로그 : 어둠으로부터의 열림
반투명한 페이지로 조직된 책의 불투명한 물성은 텍스트가 시적으로 재조직될 가능성을 열어주는 몸체로서 자리한다. 이러한 책 작업은 전시의 말미에 전시된 (2025)가 지닌 먹지의 물성 및 쓰기의 속성과도 맞닿는다. 마치 언어가 발휘하는 영향력이 몸에 남겨지는 것처럼, 쓰기의 흔적은 먹지 위에 흐릿한 자국으로 남아 관객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점성과 밀도, 메시지의 존재 방식을 다르게 드러낸다. 중첩된 언어의 물성과 쓰기의 감각이 유동하는 어둠의 상태로 심화된 먹지 드로잉은 두 번째 목탄 드로잉인 <검음 안에서>와 상호텍스트적으로 공명하며, 어둠 속에서 발견되는 쓰기의 가능성, 독자와 관객의 읽기에 의해 끊임없이 발굴가능한 쓰기의 근원적 발현을 깊은 침묵 속에서 목도하게 한다. <검음 안에서>는 전시공간에서의 빛의 조건,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위상에 따라 빛이 발현되고 감각되는 작업이다. 작가가 말하듯 검은색은 때때로 모든 의견이 수몰된 상태를 상징하지만,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어둠의 조건 속에서만 감지되는 미세한 빛을 전파하기도 한다. 이렇듯 이번 전시에서 검은 화폭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는 잔존의 흔적,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되려 떠오르는 언어의 해방 가능성은 돌림노래처럼 전시의 시작과 끝을 엮어낸다.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롤랑 바르트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열림(opening)’2) 의 장소로서 《Wet Words Whisper Wide》는 관객에게 하나의 메세지가 아닌, 무수한 쓰기와 읽기의 경로를 전한다. 전시장을 오가는 복수의 웅얼거림과 머뭇거림이 해방시킬 또 다른 언어의 등장을 상상하며 이 글을 마친다.
심소미(독립 큐레이터)
1) 줄리아 크리스테바, 김인환 역, 『시적 언어의 혁명』(동문선, 2000) 참조.
2) 롤랑 바르트, 김희영 역, 「저자의 죽음」, 『텍스트의 즐거움』(동문선, 2002) 참조.
작가 약력
학력
2024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한국화 박사 수료
2020 런던예술대학교 캠버웰예술대학 회화 석사
2016 숙명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 한국화 석사
2013 숙명여자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학사
주요 개인전
2025 Wet Words Whisper Wide, OCI미술관, 서울
2024 언어-되기, 아트스페이스 보안3, 서울
2023 Fluid Language, 더레퍼런스, 서울
2022 속으로 흐르는 하얀 포말들, 얼터사이드, 서울
주요 단체전
2025 말하는 머리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서울
무풍지대, TINC(This Is Not a Church), 서울
2024 Cultural Resonance, 리엔갤러리, 항저우, 중국
발화점, 더레퍼런스, 서울
우리들 대각선에서 장벽은 먼 곳의 흰 면이다, ABI SPACE, 항저우, 중국
2023 오해∙오역∙오독의 시, 신한갤러리, 서울
2022 Floating Truth, 가나아트 나인원, 서울
2021 Journey into Unknown, 코플랜드 갤러리, 런던, 영국
NEW WORLD, NEW WORD, ACC아시아창작스튜디오, 광주
2020 London Grads Now, 사치갤러리, 런던, 영국
수상 / 선정
2024 2025 OCI YOUNG CREATIVES 선정, OCI미술관, 서울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23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선정,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
2022 예술창작기획지원 선정, 화성문화재단, 화성
레지던시
2021 ACC아시아창작스튜디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20 The New Artist, 온라인 레지던시, 영국
연락
jooyounglee.com | jooyoungleeart@gmail.com | @jooyoung.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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